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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김진영선교사)


[1010 메시지 2023년 10월] 뭘 더 내려놓아야 하는가

swm 2023.10.09 06:50 조회 수 : 15

저는 한국에서 불교 고등학교에서 다니며3년 동안 불교에 심취한 적이 있었습니다. 비록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고 교회를 다녔지만 학교 불교 교화반에 들어가 불경을 열심히 배우고 명상 훈련을 했습니다. 여름 방학 기간에는 절에 머물기도 했지요.

불교의 교리에서 색즉시공 공즉시색 (色卽是空空卽是色) 물질이 곧 공이요 공이 곧 물질이다 해석하자면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이고 보이지 않는 것이라도 보이는 것이다. 절대적인 진리는 없다는 것이고 인생은 공수래 공수거(空手來空手去) 빈 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기 때문에 ‘무소유’을 강조합니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지만 살아가면서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은 죄, 욕심, 욕망, 유혹에서 벗어나려는 끊임없이 노력하지만 결국 죽음 앞에서 무능력하고 허무하다는 결론을 갖게 됩니다.

전도서에서 “그가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은즉 그가 나온 대로 돌아가고 수고하여 얻은 것을 아무것도 자기 손에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전도서 5:15).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딤전 6:7) 선포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무소유의 삶을 살아가는 기독교 수도사들이 있습니다. 제가 2008년 터키 동남부의 한 수도원에서 머물면서 수도사의 삶을 볼 수 있었습니다. 수도사는 하루 3번 기도와 묵상, 공동체 생활을 하는데 방에는 나무 책상, 나무 침대, 그리고 몇 권의 책과 2-3벌의 옷이 전부입니다. 수도사의 삶은 그야말로 무소유, 금욕적인 단순한 삶을 평생 살아갑니다.

우리의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것으로 채울 때 비로소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내려놓음’ 이란 책이 한국 교계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적이 있었습니다. 그 후 ‘더 내려놓음’이라는 책을 통해 ‘내려놓음’이란 자신의 힘이나 의지가 아닌 하나님의 자비로 가능한 소중한 은혜임을 깨닫는다 말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제자로서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가? 내려놓음은 무소유의 삶인가? 포기하는 삶인가? 우리가 갖고 있는 것 중에 무엇을 내려놓고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가 고민하게 됩니다. 저는 선교사로서 헌신했기 때문에 복음을 위해 많은 것을 내려놓고 포기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는 제자는 돈, 명예, 지위, 심지어 부모와 자녀까지도 하나님 보다 우선할 수 없습니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마 10:37-38).

그렇다면 우리가 소유하고 누리는 것을 포기하고 소중한 관계까지 포기하는 것이 내려놓음인가? 사실 이 세상에는 기본적으로 필요하고 중요한 것조차도 소유하지 못하고 누리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Homeless 사람은 내려놓을 재물이 없습니다.

내려놓는 것, 포기하는 것은 어느 정도 실천할 수 있지만 또 다른 것으로 채워지게 때문에 인간의 힘과 노력으로 어느 정도의 수준에 도달할 수 있지만 재물, 명예, 지위, 자격, 재능 등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을 다 내려 놓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오래전 일이지만 저희 두 아들의 돌잔치를 할 때 우리의 자녀가 아닌 하나님의 자녀임을 선포하고 우리에게 맡겨 주신 아이가 믿음으로 잘 성장하기를 기도했습니다. 따라서 저희가 C&MA 선교사로서 러시아로 가게 되었을 때 선교사 자녀들은 소련 붕괴이후 교육을 받을 환경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선교사 자녀는 6살이 되면 초등학교 1학년부터 부모를 떠나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다니게 됩니다.

부모와 어린 자녀들이 헤어지는 아픔과 그리움이 있었지만 자녀는 우리의 소유가 아닌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에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둘째 아들이후 15년만에 셋째 아들 요셉이 태어났습니다. 저희가 본부 사역을 위해 미국에 오게 되었고 요셉이가 남가주에서 초등학교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이곳 교육 분위기는 부모의 교육열이 대단한 곳입니다. 주위의 영향과 분위기 때문에 아들 요셉이가 자꾸 뒤처지는 느낌도 받았고 동시에 아들을 소위 유명한 대학에 보내고 싶은 욕심이 슬그머니 올라오면서 내가 이루지 못한 꿈을 아들을 통해 성취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아들아 열심히 공부해라” 자꾸 잔소리하는 제 자신을 보면서 ‘아 나도 별 수 없구나’, 자녀를 내려놓지 못한 저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저의 욕심과 대리 만족을 하려는 제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면서 아들에게 “아빠가 잘못했다 미안하다. 이제 잔소리하지 않으마.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너의 가는 길을 진심으로 격려하며 축복한다.” 이렇게 말하니 비로소 자유와 평안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선교사로 헌신하여 나름대로 포기했고 심플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도 나의 내면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죄의 모습,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갖고 누리는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며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면서도 아직도 우리의 것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의 소유라고 한다면 우리의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사실 내려놓을 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주인이 여호와 하나님, 우리의 통치자가 여호와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단지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을 관리하는 청지기라고 고백하고 믿는다면 우리는 내려놓을 것이 없는 것이지요. 문제는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을 우리의 것으로 착각하고 우리의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기도 동역자님, 우리는 하나님의 것을 열방으로 흘러 보내는 통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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