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기도 동역자님, B2N 2027을 소개하면서 이런 질문을 듣습니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는데, 왜 튀르키예까지 가서 기도해야 합니까? 우리 교회에서도 기도할 수 있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디에서 기도하든지 들으십니다. 골방에서 드리는 기도도, 교회에서 드리는 기도도, 병상에서 드리는 기도도 귀하게 받으십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시간과 비용을 들여 안탈리아에 모이려고 합니까? 오늘 여러분께 전하고 싶은 답은 이것입니다. 우리는 함께 기도하고, 현지 교회와 함께 서며, 그 땅과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을 행동으로 나타내기 위해 갑니다. 이 말씀을 세 가지로 나누어 생각하겠습니다.
첫째, 함께 모이는 기도는 우리의 하나 됨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은 골방에 들어가 은밀하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6장). 사람에게 보이려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기도를 드리라는 말씀입니다. 동시에 사도행전 1장 14절은 제자들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고 기록합니다. 제자들은 각자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함께 모였고, 마음을 같이했고,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렸습니다. 사도행전 13장에서도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들이 함께 주님을 섬기며 금식할 때, 성령께서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는 금식하고 기도하며 두 사람을 선교사로 파송했습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는 교회가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그 뜻에 함께 순종하는 자리였습니다.
우리도 가족에게 어려운 일이 생기면 전화로 위로합니다. 멀리서 기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형편이 허락할 때 직접 찾아가 손을 잡아 주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우리가 함께하겠습니다.” 직접 찾아가는 발걸음이 그 마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B2N의 현장 참여도 그러합니다. 서로 다른 나라와 언어의 성도들이 한자리에 서서 함께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입니다. 여러분의 기도에 우리도 함께하겠습니다.”
그러나 같은 장소에 모였다고 저절로 하나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교회, 우리 단체, 우리 민족만 앞세우면 많은 사람이 모여도 마음은 흩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먼저 준비해야 할 것은 겸손한 마음입니다. “주님, 우리의 교만과 분열을 용서해 주십시오. 다른 교회를 존중하고, 다른 민족의 아픔을 듣게 해주십시오.” B2N의 연합은 서로의 손을 잡기 전에, 우리 자신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는 데서 시작됩니다.
둘째, 그 땅에 가는 것은 현지 교회와 함께 서기 위해서입니다.
오늘날 튀르키예 땅에는 사도 바울의 선교 발자취와 초대교회의 역사가 남아 있습니다. 사도행전 14장 25–26절은 바울과 바나바가 버가에서 말씀을 전한 뒤 앗달리아로 내려가, 그곳에서 배를 타고 안디옥으로 돌아갔다고 기록합니다. 그 앗달리아가 오늘날의 안탈리아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복음의 역사를 기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관심은 옛 유적을 보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오늘 그곳에는 예수님을 믿고 살아가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들이 있고, 복음을 전하는 사역자들이 있으며, 여러 어려움 가운데 믿음을 지키는 공동체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들을 만나 함께 예배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도 제목을 나누기 위해 갑니다. 현지 교회를 존중한다는 것은 우리가 가진 계획을 앞세우기보다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그들이 필요로 하는 동역이 무엇인지 묻고, 복음을 위해 함께 섬기는 것입니다. 튀르키예 교회가 세계 교회를 초청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 초청에 응답하여 함께 서는 것은 이런 마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여러분은 혼자가 아닙니다. 세계 교회가 여러분을 기억하고 함께 기도합니다.” 우리가 아스펜도스 고대 극장에서 예배할 때도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고난 속에서도 복음을 지켰던 초대교회 성도들의 믿음을 기억하며 우리의 믿음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나는 복음을 위해 무엇을 드리고 있는가? 나는 연약한 교회를 얼마나 기억하고 있는가? 다음 세대에게 어떤 믿음을 물려주고 있는가?” 아스펜도스 고대 극장에서 여러 민족의 성도들이 함께 예배할 때, 살아 계신 그리스도의 교회가 오늘도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만남은 B2N 이후에도 이어져야 합니다. 얼굴을 알고 이름을 기억하며 기도할 때, 먼 나라의 소식이 우리 형제자매의 기도 제목이 됩니다. 우리는 그 땅을 알아보기 위해 가고, 그 교회를 사랑하기 위해 가며, 돌아온 뒤에도 함께 섬기기 위해 갑니다.
셋째, 우리는 십자가의 사랑으로 민족들을 축복하기 위해 모입니다.
에베소서 2장 14절은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라고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로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하게 하셨고, 서로를 가로막는 적대의 담을 허무셨습니다. 튀르키예와 중동, 그리고 주변 지역의 여러 민족에게는 오랜 갈등과 깊은 상처가 있습니다. 튀르키예인과 쿠르드인, 아랍인과 페르시아인, 유대인과 아르메니아인, 그리스인 등 각 민족에게 저마다의 아픔과 기억이 있습니다. 우리가 한 번 모여 예배한다고 모든 갈등이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 앞에서 새로운 관계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서로의 아픔을 듣고,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고, 용서를 구하고, 상대를 위해 기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들을 위해 용서를 구하셨습니다. 스데반도 자신을 돌로 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이어가야 할 믿음도 그 사랑입니다.
우리는 이슬람권 사람들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뉴스 속 갈등만 기억하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아픔에는 무관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땅의 사람들을 사랑하십니다. 그곳의 부모와 자녀들을 사랑하시고, 난민과 가난한 이들을 사랑하십니다.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이들도 사랑하십니다. 우리는 그 사랑에 참여하도록 부름받았습니다. 그곳에서 우리가 드릴 기도는 이런 기도입니다.
“주님, 이 땅의 가정들을 지켜 주십시오. 상처 입은 사람들을 위로해 주십시오. 교회에 사랑과 담대함을 주십시오. 모든 민족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과 평화를 알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이 기도는 우리의 삶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돌아온 뒤에도 한 나라를 위해 꾸준히 기도하고, 한 현지 교회를 기억하고, 한 사역자를 격려하며, 우리 곁의 이주민과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B2N에서 드리는 기도는 우리가 일상에서 계속 살아낼 헌신의 시작입니다.
사랑하는 기도 동역자님, 모든 성도가 안탈리아에 가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건강과 재정, 가정과 사역의 형편 때문에 갈 수 없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의 기도 역시 귀합니다. 현장에 가는 성도와 기도로 보내는 성도는 함께 사명을 감당하는 동역자입니다. 갈 수 있는 분들은 기도하며 B2N에 참여해 주세요. B2N은 일생에 단 한 번 있을 놀라운 은혜와 축복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 현장에 갈 수 없는 분들은 참가자들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현지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모임 이후에도 선교적 헌신이 이어지도록 함께해 주십시오.
“왜 거기까지 가서 기도해야 합니까?”
그곳에서 함께 모여 기도함으로 서로를 격려하고, 현지 교회를 사랑하며, 십자가의 용서와 화해를 증언할 수 있습니다. 또한 역사 현장의 증인으로서 우리 삶에 잊을 수 없는 은혜와 축복을 경험할 것입니다.